[광화문·뷰]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국민연금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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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식 급등 ‘축포’ 터지자
비중 늘린 아마추어적 판단
고갈 시점 미뤄졌다던 대통령
주가 급락 후엔 왜 말이 없나
큰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는 미국 대학들은 1960년대 주식 투자 비중을 일제히 확대했다. 예일대의 경우 수십 년간 35%로 유지해온 비중을 61%로 늘렸다. 베트남전 특수에 저금리가 겹치며 주식이 급등하던 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 시장 ‘거품’이 꺼지며 대학들이 큰 손실을 봤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책 ‘현명한 투자자’에서 이 사례를 들며, 정해둔 비중을 유지하는 장점에 대해 “주가가 오를수록 주식 비중을 높이려는 치명적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치명적 유혹’을 국민연금이 못 견뎠다. 연말 기준 14.9%로 정해둔 한국 주식 투자 비중을 20.8%로 올리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월 국무회의에서 “수익률이 좋아 적립액이 300조원 가까이 늘었다”고 언급한 지 한 주 후 내린 결정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 주식이 급등하던 6월에도 덕분에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많이 미뤄졌다고 홍보했다. 당시 고점 대비 코스피가 26% 내려갔으니 고갈 시점은 다시 당겨졌을 텐데, 어째 언급이 없다.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이 급등한 올해 상반기 내내 평가 가치가 늘어난 자산을 파는 ‘리밸런싱’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외국인 투자자들만 원칙대로 한국 주식을 팔고 이익을 챙겨 나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주 국회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주가 부양에 동원됐다는 지적에 반박하면서 “변동성이 있는 상황이라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리밸런싱은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손실 위험을 줄이는 기법인데, 아마추어처럼 정반대 논리를 펴서 놀랐다”고 했다.
글로벌 투자사 바클레이즈는 얼마 전 보고서에 “연금은 보통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은 반대로 리밸런싱을 유예하고 한국 투자 비중을 늘려 변동성을 키웠다”고 했다. 한국 주식이 올랐을 때 팔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연금 적립액은 리밸런싱을 했다고 가정할 때보다 적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달 코스피 하락률을 반영하면 국민연금의 한국 주식 평가액이 추가로 130조원 정도 줄었다고 추계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국민연금이 한국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다. 한국 인구 구조상 연금으로 나가는 돈은 보험료 수입보다 필연적으로 많아진다. 정부 전망 기준 2030~2040년 사이에 이런 ‘크로스’가 예상된다. 때가 오면 국민연금은 투자 자산을 매도해 지급액에 보태야 한다. 한국 주식을 많이 팔수록 한국 시장에 닥칠 충격은 커진다.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 비중을 2015년 20%에서 14%대로 꾸준히 줄여왔는데, 그 배경엔 이런 ‘예고된 위험’에 대비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정부는 이를 한 방에 원점으로 되돌렸다. 제거하던 뇌관을 다시 가져다 심은 셈이다.
코스피가 오른 2021년에도 국민연금은 논란 끝에 한국 주식 투자 비중 확대를 결정했다. 이듬해 코스피는 25% 급락했고 큰 손해를 본 국민연금의 판단에 많은 비난이 일었다. 김용범 정책실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당시 각각의 자리에서 기금운용위원회 결정 과정에 참여했다. 뼈아픈 경험을 한 정부 책임자가 셋이나 된다. 비슷한 실수를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하지 않나.
예일대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리적 자산 배분과 엄격한 비중 관리를 합친 ‘예일 모델’을 구축해 기관 투자의 모범이 됐다. 운용 책임을 오래 맡은 전설적 투자자 찰스 엘리스는 고통스럽더라도 원칙을 흔들면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투자 원칙을 바꾸면 틀릴 확률이 높아져요. 급하게 바꾸면 분명히 틀립니다.” 내 노후 자금이 틀린 길을 가고 있다.
위험하다.
김신영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