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연구회 성명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토론회 개최에 대하여 (2026년 11월 6일)
(2026년 11월 6일 오후 2시 이후부터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금연구회 성명서
시민을 앞세우지 말고,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라
― 「시민과 함께 고민하는 바람직한 기초연금 개편의 길」 시민 증언대회 및 토론회에 대한 연금연구회 입장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국무총리소속 사회대개혁위원회가 11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시민과 함께 고민하는 바람직한 기초연금 개편의 길」이라는 이름의 시민 증언대회와 토론회를 연다고 한다.
연금연구회는 이 행사의 이름부터 바로잡는다. 시민의 자리도, 고민의 자리도, 증언의 자리도 아니다. 그리고 질문한다. 누가 이들에게 ‘시민’을 대표할 권한을 주었는가?
결론이 증언보다 먼저 나왔다
주최 측은 11월 4일 취재요청서에서 기초연금 개편이 “개인 차원의 노력보다 사회적으로 집합적 부양체계를 공고히 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이미 못 박았다. 증언 이틀 전에 결론부터 공지한 것이다. 답을 써 놓고 시민을 불러 세운 행사에 ‘함께 고민한다’는 제목을 다는 것은 기만이다.
증언대부터 좌장석까지, 같은 진영의 한 식구가 모였다
증언대 네 자리 가운데 조직 직함 없이 선 사람은 기초연금 수급자 1인뿐이다. 나머지는 한국노총 전국시니어노동조합 부위원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퇴직자지부(준) 지부장,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다. 청년 몫의 자리마저 이념 결사체에 돌아갔다. 이 단체는 사무국장의 2014년 단체 소개 글에서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한국 사회에 만드는 것을 미션으로 내걸었고, 공동주최 측인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청년아카데미와 기초연금 강연회를 함께 열었다고 밝혔다. 증언대에 선 것은 청년이 아니라 이념이었다.
좌장은 공동주최 기관인 사회대개혁위원회의 분과장, 발제는 주관단체의 정책위원장이다. 둘 다 참여연대에 깊이 관여하면서 특정 진영의 논리를 설파해온 인물이다. 토론석에는 참여연대, 전 민주노동연구원장, 공무원노조연맹 간부, 그리고 민주당 추천으로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학자가 앉았다. 국회 자문기구를 이끈 인사가 장외로 나가 한쪽 진영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제도의 지속가능성과 세대간 형평을 말할 전문가는 어디에 있는가.
판을 짠 쪽이 사회를 보고, 발제를 하고, 증언대까지 채웠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이들을 골랐단 말인가?
정부청사의 ‘시민’, 관변 공론의 전형
창성동 정부청사에서, 국무총리 소속 정부위원회가 공동주최하고, 그 위원회 분과장이 좌장을 맡았다. 정부기구가 장소와 권위를 내주고 같은 노선의 단체와 양대 노총 조직이 자리를 채운 뒤 ‘시민’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것은 시민참여가 아니라 관변 공론이다. 정부의 이름과 공간을 빌려 ‘시민’을 내세우는 순간, 시민단체는 관변단체가 된다.
주최 측은 정부 개편안이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정부 내의 위원회가 정부청사에 제 편을 불러 모아 같은 정부 부처의 안을 압박하는 것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단순한 정부 비판이 아니다. 정권 내부의 노선 다툼을 ‘시민’의 이름으로 외주화한 어용 공론일 뿐이다.
자신들이 내건 기준으로 자신들을 재단하라
주최 측의 언론 취재요청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과 시민의 참여 및 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회 연금특위의 시민공론화 사례까지 들어가면서 정부를 꾸짖고 있다. 그런데 이 행사에는 무작위 표집도, 상반된 견해의 대등한 배치도, 균형 잡힌 학습자료도 없다. 정부에 요구하는 숙의의 요건은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시민’이라는 이름만을 가져다 쓰고 있다.
소요재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주최 측은 정부가 중기재정전망도 없이 단년도 안만 내놓았다고 비판한다. 주최 측이 스스로 밝혔듯이 2027년 기초연금의 수급자가 약 800만 명, 소요예산은 25.7조 원에 달한다. 여기에 주최 측에서 주장하는 ‘집합적 부양체계’를 더 쌓으려면 2040년, 2050년, 나아가 그 이후의 예상 소요비용에 대한 추계 자료부터 내놓아야 한다. 정부에 들이댄 잣대를 자신의 요구에서는 적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이중잣대다.
‘증언대회’라는 형식의 강압성
‘증언대회’는 흔히 피해 당사자가 진상을 고발하는 자리에 붙는 이름이다. 정책 토론에 이 형식을 씌우면 다른 견해는 피해의 부정이 되고, 반론은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기초연금을 개편하는 문제는 피해자를 찾아내고 가해자를 심판하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을 맨 앞줄에 세우고 조직이 뒤에서 결론을 밀어붙이는 것은 거리의 동원정치가 써 온 구도다. 물리력만 빠졌을 뿐, 시민을 방패 삼아 정책결정자를 압박하고 반대 의견을 ‘시민에 맞서는 목소리’로 낙인찍는 구조는 똑같다.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면 정반대 견해의 ‘증언대회’도 얼마든지 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결론들도 ‘시민의 뜻’이 된다는 것인가! 각각의 집단마다 자신의 ‘시민’을 동원하는 순간 공동체의 분열은 심화가 되고 갈등만 증폭될 것이다.
연금연구회는 우리의 주장을 ‘시민의 뜻’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연금연구회의 이름으로 말하고, 그 근거와 결과에 대해 책임질 뿐이다.
책임을 시민 뒤에 숨기지 말라
기초연금은 해마다 수십조 원의 세금이 들어가며, 그러한 제도 설계로 인해 수십 년 뒤의 세대들 부담까지도 사전에 묶어 놓는 제도다. 그러니 추계와 검증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겨야 하며, 제시된 여러 대안 중에서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확고한 원칙도 없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에만 시민을 호출하는 것은 책임정치가 아니라 책임 전가다.
연금연구회는 요구한다
하나.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참여연대는 이 행사를 ‘시민 증언대회’가 아닌 자신들의 정책 토론회로 정정하라. 시민을 빙자하지 말라.
둘. 국무총리소속 사회대개혁위원회는 특정 진영 행사에 정부위원회의 이름과 정부청사를 내준 경위를 밝히고, 관변단체를 시민의 이름으로 동원한 것을 사과하라.
주최 측이 취사 선택한 목소리를 ‘시민의 뜻’으로 포장하고 그 뒤에 숨는 순간, 시민참여는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동원된 시민의 이름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숫자와 자신들의 이름을 걸어 놓고 져야 할 책임이다.
2026년 11월 6일
연금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