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동서남북] 프랑스 청년시위가 한국에 던진 ‘폭탄’ (2026.10.22.)
열악한 교실 뛰쳐나온 佛 청년
윗세대 노후까지 떠안은 분노
일자리·집 잃은 한국은 다를까
연금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
3줄 요약
ㆍ프랑스 교육부 예산 32% 공무원 연금 투입
ㆍ한국 정부 3대 연금 개혁 방치
ㆍ청년 세대 연금 개혁 미루면 거리 시위 우려

원본보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17일 한 시위 참가자가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불길 옆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프랑스 청년 시위는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결과다. 학생들은 냉난방이 안 되고 쥐가 나오는 교실에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교사들 월급은 주요국 평균보다 낮다. 이런 가운데 내년 프랑스 교육부 예산의 32%(약 42조원)가 들어가는 공무원 연금이 재정 압박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청년은 AI로 일자리가 줄고 고물가로 내 집 마련 꿈도 멀어졌는데 윗세대 노후 보장까지 떠안게 된 셈이다.
연금 지급을 국가가 보증하는 한국에 이 사태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기초연금이 각각 재정 부담과 지속 가능성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3대 연금 개혁을 방치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이명박(2009년), 박근혜(2015년)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개혁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도 개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한 해 약 10조원 세금으로 적자를 메운다.
정서상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은 불가분의 관계다. 한쪽만 놔두면 불만이 제기된다.
지난해 국민연금 개혁은 공무원연금 개혁까지 논의를 확대할 기회였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가 실기하며 문제 해결 의지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8년 만에 개혁했지만 미완이었다. 내는 돈을 소득의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올렸지만, 동시에 은퇴 전 평균 소득의 40%를 받기로 돼 있던 것을 43%로 오히려 인상했다.
기금 소진 예상 시점이 2056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졌지만 세대 간 부담을 조정할 과제를 남겼다.
그런데 현 정부는 구조 개혁에 힘 쏟는 대신, 국민연금 기금 투자 수익에 대한 장밋빛 기대부터 띄웠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증시가 오르자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연금 기금 소진이 7년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언급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금이) 300조원 늘어난 것 같은데 7년밖에 (연장) 안 되느냐”라고 했다. 8일 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였다. 이후 증시 급락은 모두가 아는 얘기다.
3분기 국민연금 평가 손실만 약 18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금 소진 시점은 몇 년 다시 당겨졌다.
정부는 3대 연금 개혁의 핵심인 기초연금을 개편할 기회도 스스로 걷어찼다.
기초연금은 보험료를 걷지 않고 세금으로 주기 때문에 노후 안전망 강화와 국민 부담 간 균형을 맞춰야 한다.
65세 이상 70%에게 지급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월 400만원 넘게 벌어도 받는 식이다.
대상자는 축소하고 지급액은 늘리자는 전문가 의견이 많다.
이렇게 명분이 뚜렷한 기초연금 개혁마저 물러서면 다른 연금 개혁은 포기한 것과 같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8월 기초연금 개편안을 발표하기 직전에 돌연 취소했다.
복지부가 2030년까지 ‘기준 중위소득 80% 이하’ 기준을 도입해 수급자를 줄이는 방안을 준비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내년 예산안은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도 소득 하위 45% 이내인 경우에는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지급 대상과 지급액을 늘렸다.
기초연금 예산은 내년에 약 11% 오른 25조7000억원까지 불어난다.
이러니 “연금 개혁 미루다 청년들에게 ‘연금 고려장’ 당할 수 있다”는 살벌한 경고가 나온다.
훗날 청년들이 의사결정권을 쥐면, 기성세대 연금을 대폭 삭감하거나 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프랑스 거리 시위는 ‘68혁명’ 때처럼 유럽으로 확산 중이다. 그 불길은 한국에도 경고한다.
연금과 세대 간 형평성 문제에 대해 과감한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사회 전체가 심각한 불안과 갈등에 휩싸일 것이다.
선정민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