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유럽의 병자’ 된 프랑스, 청년세대의 희망 도려내 기성세대 줬다 (입력 2026.10.20.)

고령화·저성장 속 청년 불만 폭발
3줄 요약
ㆍ교육부 예산 32% 공무원 연금 지출
ㆍ25~34세 응답자 83% 현행 연금 불신
ㆍ그리스보다 높은 국채 금리와 부채 비율 증가

원본보기지난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위 모습. /연합뉴스
프랑스의 청년 시위는 연금 개혁 지연과 재정 악화에 따른 교육 예산 삭감이 맞물리면서 촉발됐다. 프랑스 교육부 예산의 32%(약 285억유로, 약 42조7290억원)는 공무원 연금으로 들어가고 있다. 공공 부문 확대와 연금·복지 지출에 의존하는 국가 운영 방식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프랑스는 1970년대 오일 쇼크로 고도 성장기인 ‘영광의 30년’이 막을 내렸다. 이후 복지 지출을 늘려 취약층을 지원했지만, 다시 성장 궤도로 오르기 위한 구조 개혁은 게을리 한 채 재정에 의존하는 경제 모델을 계속 고집했다. 결국 저성장 굴레가 닥치자 재정 지출을 줄이면 국민이 반발하고, 유지하면 나랏빚이 느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 상태로는 청년 세대에게 희망이 없는 셈이다.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프랑스 청년들 “연금 지속 신뢰 못 해”
파리 교외에 사는 직장인 플로랑 푸르농(30)씨는 노후 대비를 위해 매달 500유로(약 74만원)를 개인 투자 계좌에 넣고 있다. 그는 16일 로이터통신에 “지금의 국가 노후 연금 제도는 계속 유지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원본보기청년 시위에 긴급 대책회의 연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18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전국적인 청년 시위와 약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 장관들과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 /EPA 연합뉴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IFOP가 6월 발표한 조사에서 25~34세 응답자 83%는 ‘현행 연금 제도가 충분한 노후 연금을 보장해 줄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프랑스는 은퇴 전 소득의 70% 넘게 보장하는 ‘연금 사회’로 유명하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55%쯤인 독일, 영국보다도 훨씬 높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자신의 연금이 불안해 따로 돈을 모은다.
노후 보장 부담은 커지는데, 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의 2024년 보건·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32.6%로 유로 지역 평균보다 5%포인트 높다. 연금 등 노령 관련 지출만 GDP의 13.4%에 이른다.이런 가운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역점 정책인 연금 개혁은 국민 반발과 정치적 혼란 끝에 좌초 위기에 놓였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 말 사회보장 예산안 처리를 위해 야당인 사회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2023년 시작한 연금 개혁의 핵심 조치를 유예했다. 연금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개혁은 2028년 1월까지 유예됐다.
세대 간 자산 격차도 문제
세대 간 자산 격차도 청년 분노를 키웠다. 프랑스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초 가구주가 30세 미만인 가구의 총자산 중간값은 2만6100유로로, 60~69세 가구(24만5000유로)의 9분의 1 수준이었다. AFP통신은 지난 1월 학생 단체 조사를 인용해 대학생의 48%가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른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격차 해소를 위해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감당할 경제의 성장세가 약해졌다는 점이다. 프랑스 경제는 올해 1분기(1~3월) -0.2%, 2분기 0% 성장에 그쳤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어진 에너지 시장 불안과 올해 중동 사태에 따른 유가 상승, 중국 소비 부진에 따른 명품 산업 침체까지 겹쳤다.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증액 압박 등도 재정에 추가 부담이다. 재정 쓸 곳은 느는데, 성장이 멈춰 추가로 돈이 들어올 곳은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보다 비싸게 돈 빌려야
국제 금융시장에선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국가들에 대한 금리 차별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프랑스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115.6%)은 과거 재정 취약국이었던 그리스(146.1%), 이탈리아(137.1%)보다 낮지만 벨기에(107.9%)·스페인(100.7%)보다는 높다. 하지만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현재 연 4.8%대로, 그리스(4.3%대)보다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돈을 빌릴 수 있다.
프랑스는 복지 지출로 재정이 경직적이고, 부채 증가 추세가 빠른 게 문제로 지적된다. 2019~2025년 그리스는 정부 부채 비율을 37.1%포인트, 포르투갈은 26.4%포인트 낮췄다. 반면 프랑스는 같은 기간 부채 비율이 17.4%포인트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최근 분석 보고서를 통해 “부채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낮더라도 재정 목표를 이행할 정치적 합의가 부족할 경우 시장의 신뢰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선정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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